자려고 누웠다가 잡단지성과 관련하여 생각난 것이 있어 올린다
개인 내의 집단과 관련하여 생각난 노랫말 일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자세한 얘기는 내일...
이 이야기는 구글닥스에 교재 관련에 올릴 예정임
2011. 10. 24.
2011. 10. 23.
집단지성 활용사례분석 및 개선방안 1
우선 집단지성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개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단지성 활용 사례를 분석한다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집단지성의 개념에 따라 그 사례를 무엇으로 볼 것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난 시간 정리된 개념들을 떠올리며 오늘 밤 포스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한 개념에 대한 기록이 학교에 있어서.. 내일 오랫만에 출근을 하면 후속 글을 올리겠습니당)
사례 1.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이 프로그램은 CBS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OCW 개념 같습니다.
유명한 강사들이 나와서 자기 전공 영역에서 주제를 선택하여 15분 동안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고, 애플 제품(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튠즈 등)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16개의 에피스도를 보았는데요
1회 곽동수-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 진짜 스마트하게 사는 법
2회 이범-서울교육청 정책보좌관 : 우리 아이를 미래형 인재로 키워라
...
50회 윤정숙-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 나눔의 롱테일 법칙, 빛나다!
56회 서천석-청소년소아정신과 전문의 : 하루 15분, 아이와 나를 살리는 시간
등입니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나와서 자신의 영역과 관련한 주제를 간단한 시간에
핵심만 짚어 강의를 해 주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유용한 정보를 얻기에 용이하며
관련한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됩니다.
첫째, 이런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선 고가의 장비가 요구됩니다. 기본적으로 컴퓨터(인터넷이 연결되는), 스마트폰(여기는 아이폰만 됩니다.), 아이패드와 같은 TPC, 아니면 특정 기계를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정보 접근성과 관련한 갭은 더 커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는 마치 집단지성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평등한 세계로 간다고 외치지만 그것에 접근 가능한 사람들로만 한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큰 맥락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이 프로그램에 한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TED나 유튜브, FB, 트위터 같은 내용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최소한 이 프로그램에 한정해서는 정보의 제공자와 수용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대학의 OCW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만,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제작하여 팟캐스트로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세 번째 문제와 연결됩니다.
셋째, 최근 팟캐스트의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는 꼼수다"입니다. 정치 풍자 프로그램으로서 현정권을 논리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사회적 환경과 맞물려 이 프로그램이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콘텐츠와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두번째 말미에 말씀 드린 것처럼 물론 개인도 팟캐스트를 제공할 수 있지만 개인의 콘텐츠 브랜드가 우선 미미할 경우 이것이 공유되는데 있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자극적이고 매우 퀄리티가 높은 콘텐츠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내가 내 것을 공유하고 싶다고 그냥 올려 놓는다고 그것이 모두 유통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결국 여기서도 자칫 콘텐츠의 권력 위계 관계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음.. 우선은 이 정도 선에서만 생각이 나는데요. 좀 더 다른 사례들을 살펴보고 추가 포스팅 하겠습니다. ^^
참고로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재밌습니다. 한 번 보세요 ^^
집단지성의 개념에 따라 그 사례를 무엇으로 볼 것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난 시간 정리된 개념들을 떠올리며 오늘 밤 포스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한 개념에 대한 기록이 학교에 있어서.. 내일 오랫만에 출근을 하면 후속 글을 올리겠습니당)
사례 1.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이 프로그램은 CBS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OCW 개념 같습니다.
유명한 강사들이 나와서 자기 전공 영역에서 주제를 선택하여 15분 동안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고, 애플 제품(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튠즈 등)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16개의 에피스도를 보았는데요
1회 곽동수-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 진짜 스마트하게 사는 법
2회 이범-서울교육청 정책보좌관 : 우리 아이를 미래형 인재로 키워라
...
50회 윤정숙-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 나눔의 롱테일 법칙, 빛나다!
56회 서천석-청소년소아정신과 전문의 : 하루 15분, 아이와 나를 살리는 시간
등입니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나와서 자신의 영역과 관련한 주제를 간단한 시간에
핵심만 짚어 강의를 해 주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유용한 정보를 얻기에 용이하며
관련한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됩니다.
첫째, 이런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선 고가의 장비가 요구됩니다. 기본적으로 컴퓨터(인터넷이 연결되는), 스마트폰(여기는 아이폰만 됩니다.), 아이패드와 같은 TPC, 아니면 특정 기계를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정보 접근성과 관련한 갭은 더 커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는 마치 집단지성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평등한 세계로 간다고 외치지만 그것에 접근 가능한 사람들로만 한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큰 맥락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이 프로그램에 한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TED나 유튜브, FB, 트위터 같은 내용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최소한 이 프로그램에 한정해서는 정보의 제공자와 수용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대학의 OCW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만,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제작하여 팟캐스트로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세 번째 문제와 연결됩니다.
셋째, 최근 팟캐스트의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는 꼼수다"입니다. 정치 풍자 프로그램으로서 현정권을 논리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사회적 환경과 맞물려 이 프로그램이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콘텐츠와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두번째 말미에 말씀 드린 것처럼 물론 개인도 팟캐스트를 제공할 수 있지만 개인의 콘텐츠 브랜드가 우선 미미할 경우 이것이 공유되는데 있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자극적이고 매우 퀄리티가 높은 콘텐츠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내가 내 것을 공유하고 싶다고 그냥 올려 놓는다고 그것이 모두 유통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결국 여기서도 자칫 콘텐츠의 권력 위계 관계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음.. 우선은 이 정도 선에서만 생각이 나는데요. 좀 더 다른 사례들을 살펴보고 추가 포스팅 하겠습니다. ^^
참고로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재밌습니다. 한 번 보세요 ^^
퇴원을 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퇴원을 했습니다.
어흐.. 성인폐렴은 정말 심한 병입니다.
보름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나왔더니
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군요..
오늘 일이 있어 대학에 나갔다 왔는데 힘이 부칩니다. ㅜㅠ
마음의 여유를 찾고 그간 둘러 보지 못했던 구글 블로그에 들어 왔습니다.
역시.. 구글 블로그.. 제게는 어렵습니다.
직관적인 애플과는 좀 많이 다르군요
병원에 있으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패드를 이리저리 여유 있게 사용해 보았고
그 매력에 빠져 폰도 아예 아이폰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음.. 왜 애플 제품을 쓰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단지성..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 아니고
이미 시작되었더라구요..
잡스.. 대단하긴 합니다..
어흐.. 성인폐렴은 정말 심한 병입니다.
보름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나왔더니
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군요..
오늘 일이 있어 대학에 나갔다 왔는데 힘이 부칩니다. ㅜㅠ
마음의 여유를 찾고 그간 둘러 보지 못했던 구글 블로그에 들어 왔습니다.
역시.. 구글 블로그.. 제게는 어렵습니다.
직관적인 애플과는 좀 많이 다르군요
병원에 있으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패드를 이리저리 여유 있게 사용해 보았고
그 매력에 빠져 폰도 아예 아이폰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음.. 왜 애플 제품을 쓰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단지성..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 아니고
이미 시작되었더라구요..
잡스.. 대단하긴 합니다..
2011. 10. 4.
SNS 도구에 대한 기본적인 나의 생각
음.. 먼저 자수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지난 시간 교수님께서 보라고 하신 e-book을 아직 보지 못한 상태입니당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기에는 부끄럽고.. 금주에는 꼭 봐야지 각오를 하게 됩니다.
오늘 여기에는 그저께 있었던 개인적 경험을 통해 SNS 도구와 웹 2.0, 그리고 교육에 대한 짧은 제 생각을 풀고자 합니다.
그제 저녁 저는 부산의 S 회사 대표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S 회사는 소셜러닝, 스마트러닝을 주력사업으로 영남 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그 사업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는 곳입니다.
회사에 대한 내용과 사업 영역은 각설하고
그 대표님과 이런저런 소회를 나누던중 대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대표님이 제게
SNS tool을 잘 다루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아주 당연하게 '아니오'라고 답을 했습니다. 평소 제 생각은 tool을 잘 다룰 필요도, 그리고 그것에 메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툴을 잘 다루고 많이 알고 있으면 편하다는 것도 알고 활용도도 높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툴의 변화를 따라 가다 보면 계속 따라만 가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SNS가 가진 속성과 SNS의 속성을 툴이 어떤 모양으로 담아 내고 있는가? 하는 논리를 파악하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툴은 공학기술자가 만들면 됩니다. 다만, 교육학자는 이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말한다면 툴에 교육이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툴이 따라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육적 필요에 의해 툴이 탄생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교육외적 부분에서 툴이 먼저 생성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특히, 근자의 매체를 중심으로 한 교육공학의 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매체가 먼저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각설하고,
저는 SNS와 교육을 연결짓는 핵심 키워드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넓게 본다면 구성주의나 임파워먼트와도 연결이 될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핵심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주권이 이제는 평등으로 간다는 것이지요. liberal education 시절에 교육을 향유할 수 있었던 자유민을 떠나 이제는 누구나 교육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근자에 등장한 웹 2.0 기반의 도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현실감 있게 설명하자면 교실에서는 교사에게 권위가 있었는데 이것이 이러닝으로 오면서 LMS 관리자, 강의자로 변형을, 웹1.0 개념의 카페나 블로그에서는 방장이나 주인이 그 권력을 행사했다면 웹 2.0 도구에서는 그 주인의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개념 차이는 발생합니다. 페이스북은 '정보'라는 항목을 통해 상대의 포지션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암묵적 권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트위터는 이 마저도 사라져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지식, 즉 교육내용에 대한 합의인데요. 즉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나 지식의 구조나 지식의 형식을 강조하게 되면 웹 2.0 개념의 도구에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다시말해 지식의 탈형식화, 탈구조화 시대가 탄생을 하게 되었고, 내용과 방법적 지식만이 지식이 아닌, 그것에 대한 개념 정의 역시 탈형식, 탈구조화가 되어 버렸다고 봅니다.
결국 웹2.0 기반의 SNS 도구들은 교육에 있어 그 주권적 측면의 민주주의를 이룬 측면과 아울러 지식 자체(지식을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했을 경우, 지식이라는 것도 결국 독립을 이룬 것이지요. 좀 관념적 말이긴 합니다. 죄송...)가 민주화가 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 모든 것이 지식이고 모든 것이 지식이 아닌 상태가 되고, 동시에 모두가 지식을 소유할 수 있으면서 모두가 지식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들어가 버리게 됩니다.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이런 카오스 상태에서도 프렉탈의 원리와 같은 근원적 구조는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상태에서 그렇다면, 개인으로서의 학습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됩니다. RSS 기능을 쓰든 뭐 어떻게 하든 그래서 personal learning environment를 구축해서 자기 중심적인 학습을 진행하려면 무엇인가 그것을 만들고 관리하고 새롭게 구축할 수 있는 자생적 힘이 본인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이제 우리는 가르쳐야 할 내용이 달라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 중요한 것이 저는 개인 중심의 자기 성격, 자기 취향, 자기 직관, 또는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제 회사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도구, 툴, 매체가 아니다. 상상해라. 그러면 그것인 곧 현실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 도구를 가공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음...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헛소리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교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바와 달리 가는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스럽네요..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건지?!에 대한 구체성을 밝혀야 하는데.. 평소 제가 하는 말이 좀 그런 부분에서 단점이 많은 것 같아요..ㅜㅠ
암튼.. 뒷부분은 좀 더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올릴께요..
아직 감기가 안나아서 헤롱거립니다.
다행이 이번주는 온라인 수업이라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쉬면서 책도 좀 보고 생각도 정리하고 해야겠습니다.
웹 2.0과 SNS는 제 생각에는 거의 철학적 수준, 패러다임 수준에서의 대변화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존심 상하지만 도구가 먼저 등장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거의 사실입니다.(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은 교육학자나 철학자가 먼저 그 개념을 정립하고 필요에 의해 도구가 나온 것이 아니라 도구가 먼저 탄생하고 교육이 따라가는 형국이라서 그런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지식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먼저 연구하신 석학이나 교수님, 선배님들께서 이런 이론과 생각을 정리한 글이 있다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부끄러움이 되겠지요.. ^^;;)
암튼... 이 대변혁의 중심에서 교육의 자그마한 부분을 담당하고 서 있는 사람으로서 조금 더 깊이, 그리고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음.. 지난 시간 교수님께서 보라고 하신 e-book을 아직 보지 못한 상태입니당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기에는 부끄럽고.. 금주에는 꼭 봐야지 각오를 하게 됩니다.
오늘 여기에는 그저께 있었던 개인적 경험을 통해 SNS 도구와 웹 2.0, 그리고 교육에 대한 짧은 제 생각을 풀고자 합니다.
그제 저녁 저는 부산의 S 회사 대표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S 회사는 소셜러닝, 스마트러닝을 주력사업으로 영남 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그 사업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는 곳입니다.
회사에 대한 내용과 사업 영역은 각설하고
그 대표님과 이런저런 소회를 나누던중 대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대표님이 제게
SNS tool을 잘 다루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아주 당연하게 '아니오'라고 답을 했습니다. 평소 제 생각은 tool을 잘 다룰 필요도, 그리고 그것에 메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툴을 잘 다루고 많이 알고 있으면 편하다는 것도 알고 활용도도 높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툴의 변화를 따라 가다 보면 계속 따라만 가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SNS가 가진 속성과 SNS의 속성을 툴이 어떤 모양으로 담아 내고 있는가? 하는 논리를 파악하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툴은 공학기술자가 만들면 됩니다. 다만, 교육학자는 이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말한다면 툴에 교육이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툴이 따라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육적 필요에 의해 툴이 탄생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교육외적 부분에서 툴이 먼저 생성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특히, 근자의 매체를 중심으로 한 교육공학의 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매체가 먼저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각설하고,
저는 SNS와 교육을 연결짓는 핵심 키워드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넓게 본다면 구성주의나 임파워먼트와도 연결이 될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핵심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주권이 이제는 평등으로 간다는 것이지요. liberal education 시절에 교육을 향유할 수 있었던 자유민을 떠나 이제는 누구나 교육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근자에 등장한 웹 2.0 기반의 도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현실감 있게 설명하자면 교실에서는 교사에게 권위가 있었는데 이것이 이러닝으로 오면서 LMS 관리자, 강의자로 변형을, 웹1.0 개념의 카페나 블로그에서는 방장이나 주인이 그 권력을 행사했다면 웹 2.0 도구에서는 그 주인의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개념 차이는 발생합니다. 페이스북은 '정보'라는 항목을 통해 상대의 포지션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암묵적 권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트위터는 이 마저도 사라져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지식, 즉 교육내용에 대한 합의인데요. 즉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나 지식의 구조나 지식의 형식을 강조하게 되면 웹 2.0 개념의 도구에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다시말해 지식의 탈형식화, 탈구조화 시대가 탄생을 하게 되었고, 내용과 방법적 지식만이 지식이 아닌, 그것에 대한 개념 정의 역시 탈형식, 탈구조화가 되어 버렸다고 봅니다.
결국 웹2.0 기반의 SNS 도구들은 교육에 있어 그 주권적 측면의 민주주의를 이룬 측면과 아울러 지식 자체(지식을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했을 경우, 지식이라는 것도 결국 독립을 이룬 것이지요. 좀 관념적 말이긴 합니다. 죄송...)가 민주화가 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 모든 것이 지식이고 모든 것이 지식이 아닌 상태가 되고, 동시에 모두가 지식을 소유할 수 있으면서 모두가 지식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들어가 버리게 됩니다.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이런 카오스 상태에서도 프렉탈의 원리와 같은 근원적 구조는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상태에서 그렇다면, 개인으로서의 학습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됩니다. RSS 기능을 쓰든 뭐 어떻게 하든 그래서 personal learning environment를 구축해서 자기 중심적인 학습을 진행하려면 무엇인가 그것을 만들고 관리하고 새롭게 구축할 수 있는 자생적 힘이 본인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이제 우리는 가르쳐야 할 내용이 달라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 중요한 것이 저는 개인 중심의 자기 성격, 자기 취향, 자기 직관, 또는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제 회사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도구, 툴, 매체가 아니다. 상상해라. 그러면 그것인 곧 현실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 도구를 가공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음...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헛소리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교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바와 달리 가는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스럽네요..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건지?!에 대한 구체성을 밝혀야 하는데.. 평소 제가 하는 말이 좀 그런 부분에서 단점이 많은 것 같아요..ㅜㅠ
암튼.. 뒷부분은 좀 더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올릴께요..
아직 감기가 안나아서 헤롱거립니다.
다행이 이번주는 온라인 수업이라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쉬면서 책도 좀 보고 생각도 정리하고 해야겠습니다.
웹 2.0과 SNS는 제 생각에는 거의 철학적 수준, 패러다임 수준에서의 대변화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존심 상하지만 도구가 먼저 등장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거의 사실입니다.(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은 교육학자나 철학자가 먼저 그 개념을 정립하고 필요에 의해 도구가 나온 것이 아니라 도구가 먼저 탄생하고 교육이 따라가는 형국이라서 그런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지식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먼저 연구하신 석학이나 교수님, 선배님들께서 이런 이론과 생각을 정리한 글이 있다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부끄러움이 되겠지요.. ^^;;)
암튼... 이 대변혁의 중심에서 교육의 자그마한 부분을 담당하고 서 있는 사람으로서 조금 더 깊이, 그리고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2011. 9. 28.
도무지..
도무지.. 다른 분들 블로그에 댓글을 달수가 없네요..
이거 뭐 왜 이리 어려운지.. 여러번 로그인을 해야 하고..
그리고 로그인해서 댓글 남기면 에러 메시지 뜨고..
죽갔습니다..ㅜㅠ
이거 뭐 왜 이리 어려운지.. 여러번 로그인을 해야 하고..
그리고 로그인해서 댓글 남기면 에러 메시지 뜨고..
죽갔습니다..ㅜㅠ
집단지성의 속성에 관하여 - 대중의 지혜를 읽고
우선, 평소에 나는 교만, 오만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쓴다는 점을 미리 밝혀야겠다.
또한, 세 살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임도 말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사족처럼 모두에 다는 이유는
대중의 지혜를 읽고 우선, 기대에 비해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다.
대중의 지혜에서 밝히고 있는 대중, 지혜의 개념과 그 조건으로서 다양성, 독립성, 분산화와 통합은 그리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도 않고 책 안의 내용들끼리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부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본데는 나 자신의 문해력 부족에 기인할 수도 있다.
음.. 하지만.. 이렇게 쉽게 쓴 책이라면 최소한 나같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음.. 우선, 대중이 되기 위한 조건이 다양성, 독립성, 분산화와 통합이니까 이 세 가지가 있으면 대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내용부터 살펴보자
먼저, 다양성에 대하여.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 다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집단사고(groupthinking)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 다양하면 그 생각의 원천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보다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집단 내에 구성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러면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잠깐씩 언급이 되긴 했는데. 음.. 뭐랄까 일종의 자발성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지난 시간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내적동기, 또는 참여동기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다양성 내에서 일종의 공통적 요소를 찾아야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까..
둘째, 대중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독립성이다. 독립성이 현명한 의사결정에 중요한 이유를 이 책에서는 먼저, 독립성은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가 서로 연관되는 것을 막아주고, 둘째, 구성원들이 새로운 정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가장 현명한 집단은 다양한 관점을 갖고 서로 독립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라는 것이다(이 두번째 이야기는 순환논리의 오류에 해당하는 문장으로 보인다.)(p.80-81). 하지만, 사람들은 독립성보다 안전한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정보연쇄파급효과 역시 독립성을 방해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순차적 요소를 제거하라고 한다. 그러면 독립성이 어느정도 보장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선 독립성이 있으려면 자기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같은 경우에 이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한국적 토양에서는 자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어려서부터 그런 교육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고, 잘못된 유교 문화로 인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잡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독립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생각 가지기부터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동시에 말한다고해서(순차적 요소를 제거한다고 해서)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자신감도 생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는(이것은 신뢰와도 연결이 되는데, 신뢰는 뒤에 다시 나온다.), 일종의 타인의 의견에 대한 존중과 만남, 대화(dialogue)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이나 의견에 대한 독립성 뿐만 아니라 물리적 독립성도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이 의견을 교환할 때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기회나 장소의 형태, 보관의 형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독립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또 다시 이러한 독립성은 누가 주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 책에서는 그 누구도 이것을 주거나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집단 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이 독립성을 지켜갈만한 능력이 되던지, 아니면 일종의 룰을 정해야 하는 문제와 만날 수 있다.
셋째, 집단이 되기 위해 분산화와 통합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 나는 여기서 정말 실망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러니까 집단지성이나 web 2.0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가 다 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읽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여기서는 하향식 보다 상향식으로서 자기중심적이며 독립된 여러 사람이 동일한 문제를 분산화된 방식으로 풀 때 집단적 해법이 다른 어떤 해법보다 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의 어느 한 부분에서 발견된 가치 있는 정보가 다른 부분을도 확실히 전해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약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런 특정 지식과 정보를 집단적 형태로 종합해 내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이러한 것이 적절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중화와 통합을 오해하면 안된다는 것인데, 통합에는 이를 위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안타까운 것은 통합 매커니즘에 대한 일반화된 전략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단지, 미국 정보기관에 대한 설명만이 나와 있을 뿐이다. 단, 퓨처맵을 설명하면서 여기서 힌트를 얻어 독자들이 스스로 이 매커니즘에 대해 사고해야만 한다.). 이 단락에서는 도대체 분산화를 할 수 있는 방법과 통합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도무지 찾지 못했다.
끝으로, 이 책에서는 조정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문화와 관행을 언급하고 있다.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크게 헷갈린다.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속성이 같은 집단에 속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말해 앞에서 언급한 다양성과 위배되는 개념이다. 문화를 어떻게 개념짓느냐에 따라 달리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문화라고 할 때 이는 다양성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대다수의 학생들이 만남의 장소로 그랜드 센트럴 역으로 가겠다는 것은 다양성에 위배된다.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을 하나로 맞춰 나가는 것이 집단지성에 해당하지 않을까? 교사집단, 학생집단, 종교집단, 상류집단, 중류집단, 하류집단, 흑인, 백인, 황인 등등 모두 저만의 공통의 문화를 소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문화의 속성이 조정문제의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 책에서 말하고 잇는 신뢰(p.157) 크고 확실한 조정문제의 키워드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누구를 무엇에 대해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이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또한, 세 살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임도 말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사족처럼 모두에 다는 이유는
대중의 지혜를 읽고 우선, 기대에 비해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다.
대중의 지혜에서 밝히고 있는 대중, 지혜의 개념과 그 조건으로서 다양성, 독립성, 분산화와 통합은 그리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도 않고 책 안의 내용들끼리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부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본데는 나 자신의 문해력 부족에 기인할 수도 있다.
음.. 하지만.. 이렇게 쉽게 쓴 책이라면 최소한 나같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음.. 우선, 대중이 되기 위한 조건이 다양성, 독립성, 분산화와 통합이니까 이 세 가지가 있으면 대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내용부터 살펴보자
먼저, 다양성에 대하여.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 다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집단사고(groupthinking)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 다양하면 그 생각의 원천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보다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집단 내에 구성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러면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잠깐씩 언급이 되긴 했는데. 음.. 뭐랄까 일종의 자발성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지난 시간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내적동기, 또는 참여동기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다양성 내에서 일종의 공통적 요소를 찾아야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까..
둘째, 대중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독립성이다. 독립성이 현명한 의사결정에 중요한 이유를 이 책에서는 먼저, 독립성은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가 서로 연관되는 것을 막아주고, 둘째, 구성원들이 새로운 정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가장 현명한 집단은 다양한 관점을 갖고 서로 독립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라는 것이다(이 두번째 이야기는 순환논리의 오류에 해당하는 문장으로 보인다.)(p.80-81). 하지만, 사람들은 독립성보다 안전한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정보연쇄파급효과 역시 독립성을 방해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순차적 요소를 제거하라고 한다. 그러면 독립성이 어느정도 보장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선 독립성이 있으려면 자기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같은 경우에 이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한국적 토양에서는 자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어려서부터 그런 교육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고, 잘못된 유교 문화로 인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잡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독립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생각 가지기부터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동시에 말한다고해서(순차적 요소를 제거한다고 해서)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자신감도 생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는(이것은 신뢰와도 연결이 되는데, 신뢰는 뒤에 다시 나온다.), 일종의 타인의 의견에 대한 존중과 만남, 대화(dialogue)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이나 의견에 대한 독립성 뿐만 아니라 물리적 독립성도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이 의견을 교환할 때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기회나 장소의 형태, 보관의 형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독립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또 다시 이러한 독립성은 누가 주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 책에서는 그 누구도 이것을 주거나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집단 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이 독립성을 지켜갈만한 능력이 되던지, 아니면 일종의 룰을 정해야 하는 문제와 만날 수 있다.
셋째, 집단이 되기 위해 분산화와 통합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 나는 여기서 정말 실망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러니까 집단지성이나 web 2.0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가 다 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읽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여기서는 하향식 보다 상향식으로서 자기중심적이며 독립된 여러 사람이 동일한 문제를 분산화된 방식으로 풀 때 집단적 해법이 다른 어떤 해법보다 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의 어느 한 부분에서 발견된 가치 있는 정보가 다른 부분을도 확실히 전해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약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런 특정 지식과 정보를 집단적 형태로 종합해 내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이러한 것이 적절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중화와 통합을 오해하면 안된다는 것인데, 통합에는 이를 위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안타까운 것은 통합 매커니즘에 대한 일반화된 전략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단지, 미국 정보기관에 대한 설명만이 나와 있을 뿐이다. 단, 퓨처맵을 설명하면서 여기서 힌트를 얻어 독자들이 스스로 이 매커니즘에 대해 사고해야만 한다.). 이 단락에서는 도대체 분산화를 할 수 있는 방법과 통합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도무지 찾지 못했다.
끝으로, 이 책에서는 조정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문화와 관행을 언급하고 있다.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크게 헷갈린다.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속성이 같은 집단에 속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말해 앞에서 언급한 다양성과 위배되는 개념이다. 문화를 어떻게 개념짓느냐에 따라 달리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문화라고 할 때 이는 다양성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대다수의 학생들이 만남의 장소로 그랜드 센트럴 역으로 가겠다는 것은 다양성에 위배된다.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을 하나로 맞춰 나가는 것이 집단지성에 해당하지 않을까? 교사집단, 학생집단, 종교집단, 상류집단, 중류집단, 하류집단, 흑인, 백인, 황인 등등 모두 저만의 공통의 문화를 소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문화의 속성이 조정문제의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 책에서 말하고 잇는 신뢰(p.157) 크고 확실한 조정문제의 키워드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누구를 무엇에 대해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이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2011. 9. 22.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가??
어제 수업 시간에 들었던 의문점 중 하나이다.
"우리는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가?"
많은, 새로운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기존 모델들도 날이 다르게 업데이트를 하거나 인터페이스를 바꾸고 있다.
그것들 다 따라가자니 다리가 찢어질 지경이다.
핵심을 파악하면 될 것 같은데.. 기술을 모두 익혀야 하는 부담감이 든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유비쿼터스 시대로 접어들수록 기술이 현실에 임베디드 될 것 같고
그러면 technology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손쉽게 이것들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과도기인가??
구글만봐도.. 여러가지를 통합한다고 해 놓고,
마치 대형마트처럼 이것저것을 진열 및 하이퍼링크만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너무 마트가 커지니까.. 이거 뭐 다루기가 너무 벅차다.
이런 네트워킹에 접속되어 있지 않으면 나는 도퇴되는 인간인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가??
technology????
"우리는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가?"
많은, 새로운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기존 모델들도 날이 다르게 업데이트를 하거나 인터페이스를 바꾸고 있다.
그것들 다 따라가자니 다리가 찢어질 지경이다.
핵심을 파악하면 될 것 같은데.. 기술을 모두 익혀야 하는 부담감이 든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유비쿼터스 시대로 접어들수록 기술이 현실에 임베디드 될 것 같고
그러면 technology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손쉽게 이것들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과도기인가??
구글만봐도.. 여러가지를 통합한다고 해 놓고,
마치 대형마트처럼 이것저것을 진열 및 하이퍼링크만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너무 마트가 커지니까.. 이거 뭐 다루기가 너무 벅차다.
이런 네트워킹에 접속되어 있지 않으면 나는 도퇴되는 인간인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가??
technology????
2011. 9. 21.
집단지성에 관하여
“collective intelligence”는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지능”이라고 옮겨야할텐데, 번역부터 문제가 있으니 '집단최면'에 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artificial intelligence는 “인공지능”, intelligent building은 “지능형 빌딩”이라고 옮기면서, 왜 이건 지성이라고 했을까 이상하군요. 프랑스어에서 test d'intelligence가 지능검사인 걸 보면, 레비의 책 L'intelligence collective도 뜻은 마찬가지 같군요. 그래서인지 “집단적 지적 역능”이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군요.
(출처 : http://hochan.net/2006/03/15/15:35:47)
흔히, 집단지성이라고 하면 웹2.0에 기반하여 동일한 주제(목적)을 향해 집단이 함께 창조(참여, 공유, 개방을 통해)해 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것 같다. 어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또는 주제를 완성해 갈 때 '나'보다 '우리'의 역량을 '모음'으로 인해 그 과정 중에 발생하는 시너지와 그를 통한 강력한 문제해결과 결과를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위의 댓글에서 보듯이 집단지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집단지성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면 동의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마치 성경 구약 시대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과정 같기도 하다.
뭐, 어떻든 간에 나는 집단지성을 논의하기 위해서 우선
세 가지의 개념이 명확해야 한다고 본다.
먼저, 집단의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는 집단은 어떤 집단을 의미하는 것인지, 과연 누가 집단에 참여할 수 있으며 집단을 참여시키는 권한은 누가 부여하고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정말 누구나 집단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집단지성의 집단 안에 들어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집단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해 내가 해당 영역에서 어느 정도 지식(여기서의 지식을 지성과 함께 써도 될런지 사실 의문이다. 이것도 중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질문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정말 공유과 참여의 개념에 합당한 것인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집단이라고 했을 때 그 집단의 개념을 단지 사람들의 집합, 즉 참여자들의 모임만을 집단으로 간주할 것인지, 아니면 지성의 집합체를 집단이라고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집단지성은 흔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지성을 합하는데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유기체적 관점에서 지성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간주한다면 지성의 합치된 모습, 그래서 새롭게 탄생하는 지성 역시 집단지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집단지성에서 집단의 대상이 무엇인가? 그것이 사람인가, 지성인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과 답 역시 무척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
둘째, 지성의 개념이다. 지성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봐야겠지만, 이것은 집단지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듀이가 말하는 지성, 지식이나 지능으로 번역되는 지성, 그리고 지난 시간 이상수교수님께 배웠던 바대로 문제해결력으로서의 지성. 과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집단지성의 개념이 무척 달라지게 된다. 단순히 하나의 문제해결격으로만 본다면 하나의 주제에 모여 그냥 토론하고 생성하고 지식을 만들어 가는 것은 지성이 될 수 없는가? 그렇다면 문제해결에서 다시 무엇을 문제라고 규정할 것인가? 조나센이 말하는 11가지의 문제 유형을 문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일반 과제나 탐구내용까지를 문제로 확장하여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즉 집단지성의 핵심 요체인 지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집단지성의 내용이 매우 달라지게 된다.
셋째, 집단지성은 합성어이다. 일반적으로 합성어는 두 개 이상의 다른 단어가 합해져서 만들어지는데 이때 합성어는 각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나타낸다. 즉, 다의적 의미를 창출하게 된다. 따라서 집단지성이라고 하면 집단의 개념 규정과 지성의 개념 규정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면서 새로운 의미를 나타내야 하는데, 지금 회자되고 있는 집단지성은 단어 그대로 해석해 버리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을 대단한 그 무엇으로 해석하면서 새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물음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집단지성이란 무척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그 근원적인 의미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공부하는 사람이 푯대를 제시해야지,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트렌드에 끌려 가면 곤란하지 않을까? 자, 여기서부터 우리 클래스의 본격적인 집단지성을 만들어 가 보는 것은 어떨까??
교수님, 많이 도와주세요~~~ *^^*
2011. 9. 20.
음... 구글 블로그는..
음.. 구글 블로그는 너무 어렵네요..ㅜㅠ
익숙치 않아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어렵습니당..
페이스북은 넘 쉬운데..
i-google도 어려워서 하기 싫던데.. 흠....
내가 배운 것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KP- Doctoral Course Department of Education College of Education Pusan National University, South Korea C.P. 010-2512-1233
익숙치 않아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어렵습니당..
페이스북은 넘 쉬운데..
i-google도 어려워서 하기 싫던데.. 흠....
내가 배운 것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KP- Doctoral Course Department of Education College of Education Pusan National University, South Korea C.P. 010-2512-1233
2011. 9. 15.
집단지성모형 -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변화 키워드 5가지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변화 키워드 5가지는
1. 청춘콘서트
2. 무상급식
3. (고) 노무현 전 대통령
4. FTA
5. eco system
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위의 다섯가지 키워드가 모두 SNS, 그리고 집단지성과
관련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1. 청춘콘서트
2. 무상급식
3. (고) 노무현 전 대통령
4. FTA
5. eco system
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위의 다섯가지 키워드가 모두 SNS, 그리고 집단지성과
관련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